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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전제조건과 나없음의 수행(2)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7-07-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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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전제조건과 나없음의 수행(2)

 

방대한 붓다의 가르침도 그 핵심은 인과와 자비로 함축할 수 있으며, 수행의 기준으로는 크게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基意 是諸佛敎)4행으로 칠불통게(七佛通偈)에 나오는 법구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무릇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따라서 지어진 업습을 버려서 정화시키는 수행과 함께 먼저 짖지 않도록 탐진치(貪瞋癡)를 여의고 계정혜(戒定慧)를 지키며 정진하면 마음이 정화되어 해탈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 말씀으로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수행법을 제시한 것이 사띠(알아차림)명상과 위빠사나(毘婆舍那Vipassana) 명상으로 통찰과 사념처(四念處)를 닦는 마음챙김 명상법이 있다.

이 명상법의 궁극적 목표는 마음을 정화하는 청정도(淸淨道visuddhi-magga)에 있어서, 나없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오염된 몸과 마음으로는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는 것과 같아서 수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참자아를 보고 알아차리는 견성(見性)이나 돈오(頓悟)는 물론이고, 무수한 세월과 고행을 거친다 해도 결국은 무지와 아집, 집착을 깨어서 본성을 알고 신성과의 합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챙김 명상법을 1979년 메사추세츠 대학병원의 존 카밧-진이 용어를 현대화하여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으로 현대화하여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띠(알아차림)를 핵심으로 항상 깨어있음을 추구하는 명상법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중심적 에고는 그 것을 알아차림으로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지()는 가능하나 껍질인 틀을 깨고 무의식 영역까지 확장하여 소멸시키는 완전한 정화와 청정이 나타나는 멸()의 경지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있다. 이는 산불 뒤에 남은 잔불처럼 시간이 경과한 후에 다시 발화하는 상태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의식정화의 핵심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비유하면, 흔들림과 걸림이 있을 때마다 알아차려서 깨어있음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지만, 바람과 흔들리는 가지를 인식하고, 나아가 그 결과를 있게 한 원인으로서 줄기를 따라 들어가 뿌리를 파악해야 하고, 종국에는 그 뿌리마저 캐내어 소멸시키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서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의식정화의 특성에 대하여 먼저 정화수련과 자기무화를 체험한 수행자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드러내 보일 때 우리는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진다. 자기 그늘을 불편해하지 않고 태연히 끌어안을 때 우리는 정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는 어떤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경우 그것이 카르마의 부메랑 작용이며, 과거의 내 세포와 현생의 우리 자신이 만든 작품임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를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자가 되어 증오와 원망 속에 갇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화과정이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자연치유와 심신수련의 선행조건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된다.

결국 정화수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나없음을 이루고 깨달음으로 가기위한 전제조건이고 과정이며 깨달음 또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믿음이 아니라 이성과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우리의 본성인 신성을 회복하여 그 신성이 이 지상에서 몸을 가지고 지혜와 사랑으로 발현되는 것임을 안다면 깨달음도 그 과정일 수 있다. 따라서 물리법칙이 존재하는 이 우주 안에서 에너지는 작용의 근원이며 작용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고, 우주의 창조와 조화, 무상과 진화의 법칙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일체는 원인과 결과라는 앎과 지혜가 없는 믿음은 맹신일 수 있으며, 인과를 알아서 깨달아 참자아를 찾은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의 발현이 없다면 이는 자기만족이거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다.

나없음과 신인합일의 관계는 우리는 에고에서 출발하여 부처로 가는 것이 아니고 부처로 출발하여 에고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 어느 선각자의 말처럼 우리 자신이 그 우주의식의 발현이며, 고치를 깨고 나온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것처럼, 이미 우리 안에 신성을 찾아 신성과의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며 목적이어서, 바다에서 분리된 물방울이 분리된 개체의식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막힘과 부딪침, 고통과 질병을 만나게 된다는 우주 진화의 법칙과 실체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진리를 자연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곤충과 동물의 탈바꿈이지만, 이는 세대를 거쳐서 발생하는 진화과정이 아니고 한 세대인 당대에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자는 단순한 종의 성장이나 번식을 위한 진화과정으로 보지 않고 보다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생물학자들은 이들의 탈바꿈 과정을 연구 하면 할수록 경이로 움을 느낀다고 한다.

나비의 예를 살펴보면, 암컷이 낳은 나비 유충이 알에서 부화되면 애벌레가 풀잎을 약 2주 정도 먹어서 단백질이 축적되고 몸이 커지게 된다. 이때 애벌레는 먹기를 끝내고 단단한 고치를 만들어서 외부와 완전하게 분리 된 고립상태를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이 때 고치 안의 애벌레와 번데기는 완전히 녹아서 농도가 짙은 단백질 액체가 되는 현상이다. 이는 기면서 먹어야 했던 애벌레와 번데기의 형태가 없어져 버린 것이고, 이 액체 상태의 단백질에 유전자인 DNA가 있어서, 이를 정보로 하여 3차원의 시공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체인 나비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각각 26천 만 개의 염기(genome)서열로 보존되었다가, 군용 장갑차인 탱크가 10일 만에 전투기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동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변화이기 때문에 일부 생물학자들은 곤충의 탈바꿈을 진화가 아니라고 하면서 제2의 빅뱅이나 새로운 창조과정에 비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탈바꿈을 깨달음의 전제조건으로서 자기무화 단계에서 언급하는 것은 자기무화가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사자성어의 의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단순하게 사람이 예전과 다른 사람으로 많이 변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저자의 경험으로 보아 나없음의 진정한 의미가 마음과 의식상태가 많이 변했다는 수준이 아니 것이다. 깨달음을 이룬 사람은 개체의식을 완전하게 버리고 양백이 되어서 절대의식과 합일 된 사람일뿐만 아니라, 이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상극시대에 이루어진 일체의 부정적 정보를 다 소멸시키고, 상생시대의 에너지에 맞도록 세포의 DNA가 재구성되어서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한 상태로 변화되어야 가능한 경지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힘으로 이루어지는 상극시대에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구별되고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하류층과 중산층 상류층으로 나누어져 왔다. 이를 옷으로 비유하여 벗으면 인간은 평등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으나, 옷을 벗은 대중 목용탕 안에서도 남녀노소가 구별된다. 그러나 우리 의식이 세포수준에 가면 남녀노소가 구별되지 않아서, 나는 남자니까 여자라서, 젊으니까 늙어서, 부자라고 가난하다고, 권력자나 노동자나, 배우거나 못 배우거나, 잘 났거나 못 났거나,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전과자이거나 선을 지었거나, 직업이 있거나 없거나, 오욕칠정의 수많은 감정까지도 아무런 구별이 되지 않고 절대평등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과 자기무화는 우주의 순리에 의해서 실체의 완전의식인 전대의식에 도달하여 신인합일 된 존재를 완성하고, 자신이 창조된 실존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근원회귀이며, 이러한 경지가 세포수준의 통일된 순수의식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깨달음이란 우리가 변화하고 달라져서 다른 경지로 천이 해 가는 것이지만, 그 원인과 방법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치 속의 번데기처럼 이미 우리 안에 나비로서 존재하고 있는 창조적 신성과 우리가 실존하는 진리라는 실체를 발견해 가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기초월과 근원회귀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자기를 실현하고 통일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수많은 선각자들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성한 절대의식과의 합일이 바로 통일된 삶이며, 보다 커다란 의지의 방향으로 자기를 내 던지는 자기무화야 말로 통일된 삶의 성취에 절대적인 조건이다"라고 통일된 삶을 이룬 15인 중의 한사람인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 여사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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